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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절망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절망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잉태하고 태어나는 위대한 절망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절망은 궁극의 희망입니다. 그에게 고통은 소멸해야만 끝나는 아픔이 아닙니다.

 

그 아픔 끝에 새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가치관이 성립됩니다. 거칠고, 때로는 표독스럽기까지 한 그의 날카로운 언어들이 우리의 시대까지 살아서 약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입니다. 온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쇼펜하우어의 독한 가르침'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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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인간의 자질 중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꼽아보려면 성실을 택하겠다.

성실함의 미덕은 내게 부족한 다른 자질들을 보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데

있다.

 

그러나 성실함이 부족한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도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다.

성실은 어떤 능력으로도 보완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유감스럽게도 성실한 인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동물에게 달려가야 한다.

인간은 성실에 대해 더 이상 말할 자격이 없다.

 

다른 자질은 몰라도 성실에 대해서만큼은 동물에게 다시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만약 진화론이 성실이라는 내적 본능을 동물학상에 특성으로 밝혀 놓았다면, 나는 누구보다 철저한 진화론자가 되었을 것이다.

 

성실함과 비슷한 처지로 인간에게 버림받은 또 다른 덕목은 감사다.

인간만에 고유한 덕목이라고 확신했던 감사도 지금은 동물들에게나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이미 감사의 특성을 상실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를 구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괴롭기만 하다. 감사하다는 말과 행동이 배움망덕한 행위로까지 여겨진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대응망덕한 행위는 친구로부터 은혜를 입게 되었을 때 이에 대해 보답을 해야겠다면서

상대방을 방문하거나 선물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함으로써 그에게 받은 은혜에 부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사는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진정이다. 진정으로 그에게 고마워하고 또한 그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 감사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은 들을수록 기분 나쁜 예의 바른 인사말과 형식적인 선물들이 감사를 대신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마음은 사라지고 죽은 단어들만이 맴돌고 있다.

 

이렇듯 값싼 지불의 기분이 상하느니 차라리 빌려주고 받지 않는 편이 나을것 같다. 이 모든 것이 허영이라는 의지에서 비롯되었으며 허영을 방어하는 최선의 수단은 허영을 경멸하는 것 즉 교만이다. 그런데 교만은 허용보다 더 위험하다.

인간이 교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겸손해져야 한다.

문제는 한번 교만해진 인간은 웬만한 존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이유는 그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서다. 내가 그를 경멸하는 이유는 그가 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를 쥐어뜯기라도 해야 그의 면전에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이 같은 조급함과 달리 확고한 자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타인의 칭찬이나 경멸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자의식이야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간 상호간의 관계 맺기에 서투른 까닭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거나 심술을 부리거나 교만하거나 질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는 원인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시기하고 어떻게 되는 깎아내리려고 고집을 피우는 원인은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며 허연이며 교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강물은 발 같은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는 한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조용히 흐른다.

인간과 동물의 수명은 강물과 같아서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살아있다는 의식조차 갖추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를 본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냥 무상한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내면에서 혹은 정신적으로 영혼이라고 말해도 좋다. 의지를 깨달을 때가 있다. 의지가 외부 또는 내부의 어떤 대상과 충돌하여 파열음을 발생시켰을 때다. 이를 구속이라고 한다. 의지를 구속하는 어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이제는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의지를 가로막는 어떤 존재 우리를 구속하는 어떤 상황 현재 모습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 절대자를 향한 반항에서 의지를 확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아 있음을 후회하게 만드는 그릇된 현실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상에 출연해서 우리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는 모순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길가에 돌부리의 발가락이 체어 고통이 밀려올 때면 자신의 발에 이상이 없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장사 (사업) 도 이와 비슷해서 뜻대로 돈을 벌어 흥청망청 할 때는 동전 몇 개는 잔돈 푼으로 거지에게 적선도 하지만 사업이 망하고 빛에 쪼들리는 처지가 되면 길가에 떨어진 동전 몇푼이 하루를 살아가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온한 일상 안락한 행복은 삶에서 그 비중이 극히 작다 소극적인 삶의 형태이며 인생의 미치는 영향 또한 매우 소규모다 반면에 절망과 고뇌는 삶을 적극적으로 변모시킨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분초의 고민과 고통으로 심장을 쥐어 짠다.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사유하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더듬게 된다.

눈길 조차 보내지 않던 길가에 돌멩이가 나의 엄지발가락을 저리게 만들고 발을 절뚝거리게 만들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결국 약속에 늦게 만드는 특별한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내가 형이상학을 증오하는 이유는 형이상학적 학설이 인간에게 피해를 맺히고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 대상을 무시하고 피해 의식 또는 고통이라는 인간의 부차적인 감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서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은 돌부리에 채였기 때문이고 사업이 망해서 돈이 없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발이 아파서 돌멩이를 쳐다본게 아니고 배가 고파서 떨어진 동전을 주운게 아니다. 인간의 삶에는

인간만큼이나 궁극적인 의미를 재는 대상이 포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상에 의해 인간은 더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반대로 소극적인 태도로 세월만 허비하기도 한다. 즐거움 행복 만족은 소극적인 감정이다.

이런 감정에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상이 없다기보다는 대상보다도 현재의 감정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에는 대상이 따른다.

 

절망에도 대상이 따른다. 고뇌에도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 대상이 있다. 외부와 내부의 충돌 세계와 나의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 대상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순간이 짧게 느껴지고 절망의 시간이 영원할 듯 보이는 까닭이다. 들소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사자의 의지와 사자의 송곳니에서 벗어나려는 들소의 의지, 누구의 의지가 더욱 강렬할 것인가.

 

누군가를 삼키는 쾌감과 누군가에게 삼켜지는 불쾌감의 인식을 어느 쪽이 더 클 것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따라서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는 방법은 나보다 더 비참한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도살자의 눈길이 쫓고 있는 양떼를 생각해. 보자 목장에서 유유히 풀을 뜯고 어미 품 안에서 젖을 빠는 새끼가 있다. 도살자의 선택으로 그들 중 한 마리는 잔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무리는 살아남았음에 엄청난 희열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한가로의 풀을 뜯던 평화로운 양떼가 동료의 잔혹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생애 감사하고 앞으로의 삶에 연연하게 되는 정신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도 양떼와 같은 운명임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당신의 오늘이 행복했다면 내일은 오늘의 행복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행복으로 오늘을 만족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앙으로 당신의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다.

 

질병 폭행 실명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의 오늘은 내일의 행복에 필수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절망으로 가득찬 당신의 하루가 홀로 도살자에게 끌려간 양 한 마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은 전쟁과 반란 폭압과 갈등이다. 병원은 전쟁과 전쟁 사이에 반란과 반란 사이에 독재와 혁명 사이에 잠시 찾아오는 우연한 휴식과 같았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다음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어릿광대가 보여주는 짧은 단막극의 불가했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일에 지금까지 즐거워 세계가 평화로웠다면 각국의 언어가 해석된 사전들에 평화라는 단어는 실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세계에 축소판인 개인의 삶 또한 끝없는 투쟁이다. 빈곤과 권태와의 투쟁, 질병과 살인과의 투쟁, 무기력과

교만과의 투쟁, 이웃과 국가와의 투쟁이다. 인간은 곳곳에서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발견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를 장애물이라는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는 지쳐 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삶의 활동반경에서 쉬지 않고 적을 발견하고 적을 상징하고 적이라는 이름을 붙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적이 되고자 욕망을 분출한다. 인생은 대상과의 휴전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승리자는 죽음뿐이다. 인간은 그저 무기를든 채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기억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나쁜 기억들은 빨리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에 울고 웃는 것일까. 왜 그들의 눈웃음에 화가 나고 그들의 존경어린 시선에 우쭐해지는 것일까. 내 삶을 평가할 권리가 나에게 있음에도 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내가 바라보는 나보다도 그들이 바라보는 날을 더 사랑한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정직하지가 못했다. 내가 정직한 인간이었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데 두려워했을 것이고, 나를 비웃는 조롱에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작은 비판에도 분노하고 입에 발린 칭찬인 줄 알면서도 교만했다.

 

인간은 정직해져야만 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지금 나는 본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그 평가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다. 나를 감동시키는 단 하나의 기쁨도 사랑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문명 속에서도 나는 사랑을 기다린다. 노동을 사랑하고 그 노동 뒤에 뒤따르는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이 전해지는 진실을 사랑한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사랑은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울음을 터트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트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이 밤이 부끄럽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그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더 좋은 곳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남을 굽어보는 거드름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늘에 방치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지저분하게 여겼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소중한 미덕들을 버리고 가식과 억지로 나를 꾸며 왔다. 그것이 나를 절망으로 이끌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내면은 오늘도 투쟁이다. 인간적인 의지와 영적인 의지가 서로 칼날을 겨누고 있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과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동안 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데 너무 오래 매달렸다. 나는 그것이 악임을 알면서도 행했고 그것이 선임을 자각하면서도 눈을 감아 버렸다.

 

 

 

 

인간의 의지는 스스로 좌절하지 않음을 하려해도 몇 번씩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나의 의지가 내 앞에 굴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비평가의 말처럼 나란 인간은 현대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첨단의 유행은 내 집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 사고방식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현실로 두피하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전에 어디서부터가 현실이며 어디서부터 과거인지 따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를 가늠할 권하는 오직 내게 있다. 현재를 덧없이 지나간 과거로 정열 권리가 내게 있으며 과거를 오늘처럼 살아갈 권리가 내게 있다. 특히 그 시제가 정신적인 영역에 귀속된 시간이라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또 우리가 과거의 것이라며 진부하게 여겼던 사상이 시대를 초월하는 획기적인 관념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

 

현재로 국한된 시세가 전부인 듯 착각하며 살아가기에는 인류가 이룩한 과거의 영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것을 포기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짧다. 오늘 사랑받고 싶다면 오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원활하게 이끄는 힘은 지속적인 우정에서 나온다. 우정의 성격은 차분한 한결같음이다. 변한다면 그것은 우정이 아니다.

 

들뜬다면 그 또한 우정은 아니다. 변하는 것은 계산이며 들뜨는 것은 사랑이다. 내 친구는 그곳에 있고

난 이곳에 있다. 내 친구가 그곳에서 할 일이 있듯이 나 또한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 가치관이 우정에 진리다. 그 같은 마음의 여유와 가치관이 없는 우정은 언제 눈금이 달라질지 모르는 저울이며 흥분이 가라앉은 뒤에 찾아오는 배신감이다.

 

우리는 친절과 우정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의 인격에 대한 감탄이 생긴다면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위한 헌신이다. 감탄은 그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동시에 사라지지만 헌신은 그의 그림자를 바라봄으로써 더 애잔해진다. 친절히 상대방의 감사로 만족한다면 우정은 친구의 행복으로 만족한다.

 

우정은 두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정을 가진 자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자다. 한 영혼이 쓰러지더라도 곁에 있는 또 다른 영혼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어떤 경우에도 둘이 함께 쓰러지는 법은 없다. 삶이 인간에게 우정을 선물한 까닭이다.

 

우정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우정만이 인간과 사물의 실상을 보여주며 인간다운 정당한 삶과 방법을 말해준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무엇과 친해져야 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소원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그것을 위해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인간에게는 더 크고 위대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상한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내면에 자극이 되고 분발하려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함께 진보하지 않는 우정은 나태함이다.

 

내적인 진보는 강렬한 영혼의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깨우는 자명종이다.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우정은 자기 본인에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우리가 참다한 우정을 불허하면서도 일상에서는 소모적인 만남을 반복하는 이유는 잠에서 깨어난 영혼을 두려워하게 때문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나의 영혼이 무지와 무감각과 게으름으로 얼룩진 나 자신을 보고 절망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인생이 당신에게 축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면 당신이 먼저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친해지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아파하고 싶지 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친해져야 한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너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가능하다. 너를 증오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너의 회향과 공포에 함께 울어지는 것은 가능하다.

 

너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나를 동정할 수는 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보듬고 안아줄 수 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아끼고 감싸줄 수는 있다. 그 친절에 감사할 수 있고 내가 지쳐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나를 안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타인에게 비판을 당하는 것이 불쾌하다면 나부터 타인들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 시험삼아 무엇이든 비판하고 싶어하는 나의 버릇을 잠시 중단해야겠다. 그리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야겠다. 그들이 요구하든 요구하지 않든 혹은 감사하든 귀찮아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와줘야겠다. 오늘 하루에 그칠지라도.

 

돈은 비천하고 명예는 악하며 질투는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내일 아침 나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제 아침처럼 각박하고 숨 막히고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은 하기 싫지만 부상은 남보다 많기를 바란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아는 사람 중에 출세한 인물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에게부터 사회적으로 높은 지혜를 구걸하거나 타인이 흘린 땀방울을 중간에 가로채거나 최소한의 위엄부담으로 제대로의 성과를 내려고 한다. 좋게 말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고 나쁘게 말하면 강탈이 습관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땀 흘리지 않고 불을 축적하는 사람은 소수의 불가하다. 결과적으로 불로소득을 바라는 다수의

사람이 그 같은 삶의 자세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런 잘못된 페단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 인격적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인생의 덕목이라고 생각하려는 자는 극히 드물다.

 

인간은 이래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땀방울을 요구한다.

땀방울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든다. 이것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어버린 사회다.

 

인생에서 가장 애처로운 시간은 먼 훗날 관속에 누울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때 일생을 헛된 욕망을 쫓느라 세월을 탕진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한 번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가만히 소망해 보는 때다. 한 번만 더 동일한 시간의 삶이 주어진다면 보다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 텐데 하고 후회할 때다.

 

이것이 오늘날 나와 그들의 운명이다. 교양과 계급을 막론하고 부자와 가난뱅의 상관없이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운명이다. 내가 진심으로 나의 생애를 사랑한다면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에 희망도 산산이 깨어지고 소년시절의 꿈도 여름날에 오후처럼 찌들어 버렸다. 잎의 죽음을 재촉하는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이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때 나는 낙엽처럼 저물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낙엽처럼 힘없이 추락할 때 바람에 말하고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를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고통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서 고통받기 때문이며 신을 안다고 말하는 자 중에 신을 사랑하는 자가 극히 적은 이유는 형식과 진실의 거리가 비교도 안 될만큼 멀기 때문이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에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행복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 인류의 진보 문명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고 모두 거짓말이다.

 

그들의 수고는 개인의 야심을 재우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노력이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를 실천했을 때 길에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깃발에 꽂혀 있는 종점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그 깃발을 손에 넣기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을 굳이 봐줄 필요는 없다.

타인과 다른 것을 소유하면 비교당하거나 비교할 이유가 사라진다. 노력해도 앞지르지 못할 것 같다면, 그래서 질투가 나고 괴롭다면 그들과 다른 길로 가는게 상책이다. 그 길에는 나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다면 그들이 판단할 수 없는 생활을 하면 간단하다.

 

그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착하면 해결될 문제다. 인생은 실수와 우연으로 덮여 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실수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수 뒤의 항상 우연이라는 것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우연히 무슨 짓을 저질러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줄지도 모르고, 완벽한 계획을 불이 붙어 틀어지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확신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연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말처럼 그냥 안장을 잘 얹고 말을 타면 된다. 그런 점에서 다윗왕의 삶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부하의 아내를 얻기 위해 부하를 전쟁터 맨 앞에 서게 죽게 했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다윗왕의 아들을 낳았다.

 

이 용서받지 못할 행동에 신은이 아이를 죽이겠다고 응답했다. 다이도는 살려달라고 미친 듯이 기도했다. 정신이 거의 나갈 정도로 식음을 전폐하며 이기적인 기도를 거듭해 신을 화나게 했고 결국 아들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아들의 죽음 이후 다윗왕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신을 원망했을까 왕이 되었음에도 어린 아들 하나

지켜내지 못한 권력의 허망함을 비웃었을까

 

성욕의 눈이 멀어 부하를 죽이고 그 부인을 강탈한 자신의 더러운 제약을 혐오했을까 전부 아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고 자신의 임무 즉, 왕이 되어 전쟁을 벌이고 사람을 다스리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자녀들을 생산하는 일에 열중했다. 그는 아들을 죽인 신을 여전히 찬양했고 일말의 의심 없이 믿었고 신앙 안에서 행복해했고 즐거워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원칙이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과 불성실을 후회하게해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직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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